“굿모닝 마이 브랜드☀️” 에디터 햇살입니다. 다들 이번 주 잘 보내셨나요?
오늘 금요일은 반갑게도 빨간날이네요. 쉬시는 분들도 계실 테고, 여전히 일하고 계신 분들도 계시겠죠? 각자의 자리에서 한 주 보내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남은 시간만큼은 조금 더 여유 있게, 기분 좋게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팔란티어의 CEO 알렉스 카프의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지금은 데이터와 AI 시대를 대표하는 기업의 수장이지만, 그의 출발은 어딘가에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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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아버지와 흑인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다
1967년, 뉴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소아과 의사, 어머니는 흑인 예술가였습니다. 알렉스 카프는 미국 필라델피아 교외에서 자라며, 어린 시절부터 어디에도 딱 맞게 속하지 못하는 감각을 겪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흑인으로 봤고, 어떤 이들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냥 나 자신으로 봅니다. 나를 받아들이는 모든 집단이 고맙습니다.”
부모님은 시민권과 사회 정의를 위한 운동에 적극적이었고, 어린 카프를 수많은 시위와 행진에 데려갔습니다. 학교에서는 또 다른 싸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난독증이었습니다. 글을 읽고 패턴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른 아이들과 달랐고, 공식적인 학습 시스템 안에서 그는 늘 뒤처지는 쪽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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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ios와의 인터뷰 중 눈물을 글썽이는 알렉스 카프. 유튜브 영상 출처- Axios
이후 정체성의 혼란은 가정의 어려움으로도 이어집니다.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는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보석 가게를 운영하던 집주인의 도움으로 겨우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훗날 카프는 Axios와의 인터뷰에서 이 집주인 이야기를 꺼내며 감정이 북받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그 도움을 잊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그 가게의 제품들을 애용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 장면은 그의 어린 시절 가난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카프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하버포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복잡한 숫자와 코드보다 인간과 사회, 권력을 읽는 길을 택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탠퍼드 시절, 그는 “내가 속한 모든 기관에서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합니다. 어디서든 버텨낼 수는 있었지만, 제도 안에 완전히 속해 있다는 기분은 끝내 들지 않았다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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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란티어 공동 창업자 알렉스 카프(왼쪽)와 피터 틸의 젊은 시절 사진.
그런 사람이 2004년, CEO 제안을 받습니다. 그의 스탠퍼드 시절 동문이자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의 제안이었죠. 페이팔을 이베이에 성공적으로 매각한 그는, 자신이 구상한 비전을 현실로 만들 경영자가 필요하다며 카프에게 CEO 역할을 맡기려 했습니다.
그렇게 카프는 한 회사의 창업과 동시에 CEO가 됩니다. 그리고 그 회사는 지금의 “팔란티어” 가 되었죠. 하지만 지금의 성공을 예측하지 못한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저 사람(알렉스 카프)이 진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을까?"
기술도 없고, 경영도 모르고, 글 읽는 속도도 느린 철학자가 데이터 분석 회사를 이끈다는 게 말이 되냐는 시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카프는 그런 시선을 알면서 자리에 앉습니다. 그는 이를 굳이 반박하려 들기보다, 자신만의 논리와 고집으로 묵묵히 데이터 통합과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의사결정이라는 본질에 집중했죠.
🧍하지만 의심은 곧 현실이 됩니다. 정말로 돈이 안 모였어요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가 하려던 일은 정부와 국방 기관에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이었습니다. 9·11 이후, 테러를 막기 위한 정보 분석 플랫폼. 군·정보기관·경찰이 쌓아온 방대한 데이터를 엮어 위협을 찾아내는 일이었죠.
느리고,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벤처캐피털이 원하던 회사의 모습과는 정반대였어요. 소비자 앱, 빠른 성장, 직관적인 서비스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정부 중심인 비즈니스 모델에 선뜻 돈을 넣지 않았어요. 결국 초기에는 피터 틸과 인큐텔(CIA가 설립한 비영리 전략 투자 기관)의 소규모 투자로 시작했고, 이후에도 소수 투자자들과 비공개 투자로 겨우 버텨야 했습니다.
근데 문제는 돈만이 아니었어요.
이 방향 자체가 계속 논란을 만들었습니다. 이민국, 군, 경찰이 쓰는 감시 시스템에 관여하면서 인권이랑 사생활 침해 얘기가 끊이질 않았거든요. 어릴 때는 거리에서 차별에 반대하던 사람이, 나중에는 그 시스템을 만드는 쪽에 서 있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따라붙었고요. 자기네 소프트웨어가 누군가를 추적하는 데 쓰인다는 얘기는, 창업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이 따라다닙니다.
🪨그래도 카프는 꺾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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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열린 팔란티어 팝업스토어. 놀랍게도 알렉스 카프의 첫 여자친구는 한국인이었다고 과거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총각김치, 김치찌개, 김치 반찬, 깍두기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세계적인 CEO라 그런지 한국인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멘트를 남겼습니다.
보통 이쯤 되면 창업자들은 방향을 틉니다. 투자자가 원하는 그림에 맞추거나, 논란을 피해 모델을 바꾸거나, 처음 믿었던 걸 조금 내려놓는 식으로요.
카프는 그러지 않습니다.
국방·정부 중심 전략을 그대로 밀고 가면서, 회사의 주도권도 끝까지 쥐고 갑니다. 리스크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원칙이 분명했죠.
✏️대신 버티는 방식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난독증 때문에 정보 처리 방식이 다른 자신을 위해 태극권, 명상 같은 트레이닝을 루틴으로 만들었고, 몸으로 균형을 맞추는 쪽을 택합니다. 회사 안에서는 누구나 논쟁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기술뿐 아니라 권력과 국가까지 함께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특이하게도, CEO 서신은 경영 보고서가 아니라 철학 에세이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보통의 기업은 “이번 분기에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카프의 서신은 “우리는 왜 이 기술을 만드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비판은 계속됐지만, 카프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전략을 바꾸지 않는 대신, 그 안에서 자신을 더 밀어붙이는 쪽을 선택했죠.
🌅그 결과, 세상이 뒤늦게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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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란티어 상장 첫날 주가는 원화 약 14,000원. 현재는 주당 20만원이 넘습니다(와우..). 사진 출처- 뉴스핌 기사 제목
2020년 9월, 팔란티어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직접 상장합니다. 초반 기대를 키운 건 팔란티어의 국방·정부 계약 기반 사업 구조였습니다.
투자자들은 이 회사가 단순한 소프트웨어 업체가 아니라, 장기 계약과 높은 진입장벽을 가진, 한 번 깔리면 바꾸기 어려운 행정 시스템이라고 봤습니다. 우리나라로 비유해보자면 한글 같은 느낌이에요. 장기 계약으로 높은 락인 효과를 가진 점에 주목했죠.
상장 이후 주가는 시장의 관심을 타고 크게 움직였고, 몇 년 사이 상장 전 대비 여러 배로 불어납니다. 그해 카프는 공개 기업 CEO 중에서도 높은 보수를 받은 인물로 이름을 올렸고, 정부·국방을 넘어 항공·금융·리테일까지 고객층이 빠르게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계약에만 의존하는 회사로는 안 된다"던 말들도 어느 순간 조용해집니다. 카프가 틀렸다고 했던 사람들이 결국 카프가 가던 길 위로 따라오게 된 셈이었죠.
그런데 카프는 거기서 "내가 맞았잖아"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런 말을 합니다. 정해진 코스를 밟지 않아도, 현장에서 몸으로 문제를 풀어온 사람이 결국 더 빛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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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카프. 사진 출처-techsuda
AI가 흔한 사무·분석 업무를 대신하는 지금 같은 시대에는, 결국 직접 부딪혀본 경험이랑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힘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난독증도 약점이 아니라, 세상을 다른 각도로 보게 만든 방식이었다고 받아들이고요.
어쩌면 그 말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어디에도 딱 속하지 못했던 아이. 학교에서 늘 뒤처진다고 느꼈던 아이. 가난 속에서 이방인처럼 살았던 아이. 그때의 조건들이 결국, 남들이 못 보던 걸 먼저 보게 만든 눈이 된 겁니다. 처음부터 CEO처럼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끝내 회사를 지켜낸 CEO가 되죠.
그리고 그는 지금도 같은 질문을 남깁니다.
“내가 맞았냐”가 아니라, “이게 지금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냐”는 질문을요. 그건 오래 버텨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알렉스 카프의 이야기였습니다.
*본 글은 NPR, Fortune, New York Post, 60 Minutes, Yahoo Finance 등 미국·국제 언론의 보도와 실제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무단 인용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글쓴이: 에디터 햇살(굿모닝 마이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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